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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수회담 뜻 역대 대통령 정부 횟수

느닷없네 2024. 4. 29.

 

 

 

영수회담 뜻

 

 

 

대통령과 제1야당 총재 간의 영수회담은 한국 정치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어왔습니다. 권위주의 시대부터 민주화 이행기,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영수회담의 역할과 정치적 의미를 되짚어봅니다.

 

 

▶ TK, PK 뜻 유래 DG, BG가 아닌 이유

 

 

 

영수회담 뜻

 

'영수회담'은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 간의 회담을 의미합니다. '영수(領袖)'는 집단의 수장을 뜻하며, 두 정치 지도자가 만나 주요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인 셈입니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는 대통령이 여당 총재를 겸직하고 있어 영수회담이 활발히 열렸습니다.

 

 

권위주의 시대, 정국 주도권 잡기 수단

 

이승만·박정희 정부 시절에는 영수회담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전두환 정부에서야 1987년 6월 민주화운동 와중에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와 영수회담을 가졌죠. 이 회담 결과 이어 '6·29 민주화 선언'이 있었습니다.

 

 

과도기 정부, 타협과 협치 무대

 

영수회담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노태우·김영삼·김대중 정부 때입니다. 3김 시대라 불리는 이 시기에는 대통령과 야당 대표 모두 강력한 카리스마와 지지기반을 확보하고 있었죠. 영수회담을 통해 협상과 타협이 이뤄지면서 정국 운영의 주요 수단이 되었습니다.

 

 

참여정부 이후 영수회담 위상 약화

 

참여정부 이후 당정분리 원칙이 자리 잡고 정당민주화가 이뤄지면서 영수회담의 위상은 점점 약화되었습니다. 대통령이 여당 총재를 겸직하지 않게 되면서 영수회담을 여야 대화 채널로 인정하지 않는 시각도 생겼습니다.

 

 

정부별 영수회담

 

1. 이승만 정부 (0회)

이승만 정부 시절에는 영수회담이라는 개념이 없었음

 

 

2. 박정희 정부 (5회)

1965년 7월 20일

박정희 대통령 - 박순천 민중당 대표

 

1970년 8월 29일 등 (총 2회)

박정희 대통령 - 유진산 신민당 총재

 

1975년 5월 21일

박정희 대통령 - 김영삼 신민당 총재

 

1977년 5월 27일

박정희 대통령 - 이철승 신민당 총재

 

 

3. 최규하 정부 (1회)

1980년 2월 18일

최규하 대통령 - 김영삼 신민당 총재

 

 

4. 전두환 정부 (1회)

1987년 6월 24일

전두환 대통령 -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

 

 

5. 노태우 정부 (2회)

1988년 8월 31일

노태우 대통령 - 김대중 평화민주당 총재

 

1990년 1월 11일

노태우 대통령 - 김대중 평화민주당 총재

 

 

6. 김영삼 문민정부 (2회)

1994년 3월 11일

김영삼 대통령 - 이기택 민주당 대표

 

1996년 4월 18일

김영삼 대통령 -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대표

 

 

7. 김대중 국민의 정부 (8회)

1998년 2월 27일

김대중 대통령 - 조순 한나라당 총재

 

1998년 11월 10일 등 (총 7회)

김대중 대통령 -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8. 노무현 참여 정부 (2회)

2005년 9월 7일

노무현 대통령 -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2007년 2월 9일

노무현 대통령 -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

 

 

9. 이명박 정부 (3회)

2008년 5월 20일

이명박 대통령 -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

 

2008년 9월 25일

이명박 대통령 - 정세균 통합민주당 대표

 

2011년 6월 27일

이명박 대통령 - 손학규 민주당 대표

 

 

10. 박근혜 정부 (0회)

영수회담은 없었으나 다자회담은 여러 번

여야 대표와 3자 회담

원내대표까지 5자 회담

 

 

11. 문재인 정부 (1회)

2018년 4월 13

문재인 대통령 -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12. 윤석열 정부 (1회)

2024년 4월 29일

윤석열 대통령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역대 주요 영수회담과 정치적 파장

 

● 1975년 박정희-김영삼 회담: 김영삼 측 밀약설로 큰 파장

 

1987년 전두환-김영삼 회담: 6·29 민주화 선언 이끌어

 

1996년 김영삼-김대중 회담: DJ 정부 출범 계기

 

2005년 노무현-박근혜 회담: 대연정 제안 거부

 

2011년 이명박-손학규 회담: 현안 타결 실패로 '무용' 평가

 

 

영수회담의 한계와 필요성

 

최근 정치 환경 변화로 영수회담만으로 현안을 해결하기 어려워졌습니다. 하지만 정부와 야당의 최고 수준 대화 창구로서 여전히 정치적 의미가 있다는 평가입니다. 앞으로도 영수회담은 중대 현안 해결을 위한 협치 무대로 활용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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